비와호 수로란

교토의 위대한 산업 유산인 ‘비와호 수로’는 오쓰시 간논지에서 교토시 후시미구 호리즈메초까지 전체 길이 약 20km의 ‘제1수로’, 전선 터널로 제1수로의 북쪽에 나란히 설치된 전체 길이 약 7.4km의 ‘제2수로’, 교토시 사쿄구의 게아게 부근에서 분기해 기타시라강에 이르는 전체 길이 약 3.3km의 ‘수로 분선’ 등으로 구성되며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하는 시설입니다.

  • 기타가키 구니미치

  • 다나베 사쿠로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 천도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쇠퇴한 교토를 걱정한 제3대 교토부 지사 기타가키 구니미치는 부흥책으로 비와호에서 물을 끌어와 그 물의 힘으로 산업 진흥을 도모하는 ‘비와호 수로’ 건설을 계획했습니다.
도쿄의 고부대학교(현재의 도쿄대학 공학부)를 막 졸업한 다나베 사쿠로 등과 함께 착수한 공사는 4년 8개월의 세월을 들여 메이지 23(1890)년에 완성됩니다. 비와호 수로를 활용한 수력발전과 수차 동력은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선박 운수로 사람과 물건의 왕래가 활발하게 되는 등 교토는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1・제2수로의 합류점

그로부터 20년 후에는 더욱 풍부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제2수로를 건설하고 상수도를 정비했습니다. 또한, 도로 폭을 넓히고 시영전철을 일본에서 최초로 개통하면서 오늘날 교토의 도시 조성의 기반이 완성되었습니다. 1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비와호 수로는 여전히 교토에 생명의 물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비와호 수로의 역사

메이지

샤프트 공장 상부 토석 운반(다무라 소류 그림)

메이지 14(1881)년에 제3대 교토부 지사에 취임한 기타가키 구니미치는 막부 말기의 전쟁으로 인한 재난과 메이지 유신으로 사실상 도쿄 천도가 이루어짐에 따라 침체되어 있던 교토를 부흥시키기 위해 비와호에서 끌어온 수로의 수력으로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배로 물자의 이동을 활발히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비와호 수로의 공사에 관한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고부대학교를 막 졸업한 다나베 사쿠로를 주임 기사로 채용하는 등의 준비를 진행합니다.

벽돌 제조소 야마시나 고료무라(다무라 소류 그림)

이 무렵 일본의 중대 토목공사는 외국인 기사가 설계 감독을 담당했는데 비와호 수로의 건설은 모든 것을 일본인의 손으로 이뤄낸 일본 최초의 대규모 토목사업이었습니다. 공사는 메이지 18(1885)년에 시작되어 자재 부족과 거의 인력에 의한 작업 등 고난도 많았지만 일본에서 처음으로 수직 갱도를 이용한 공법을 적용하는 등 기술적 고안에 힘입어 5년 후인 메이지 23(1890)년에 완성했습니다

게아게 정박지와 드럼 공장(메이지 26(1893)년)

제1수로의 완성과 더불어 일본 최초의 사업용 수력 발전소로 ‘게아게 발전소’가 건설되어 수로의 물을 사용해 전기를 만들어 전등과 공장 동력에 이용하게 되었습니다(전기 사업). 또한, 운하를 뚫어 오쓰 및 후시미, 오사카간 쌀, 숯, 목재, 석재 등이 배로 운반됨과 동시에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도 많이 오갔습니다(주운 사업). 그 밖에 정미와 방적 등에도 이용되었고(수력 사업) 히가시혼간지 절과 교토 고쇼에서는 방화용으로 난젠지 절 부근의 별장군에서는 정원 용수로 수로의 물을 끌어들였습니다.

사이고 기쿠지로

한편, 메이지 30년대에 들어서자 제1수로의 유량으로는 매년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채우지 못하게 되었고 지하수에 의존하던 시민의 음료수의 질과 양 모두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2대 교토시장 사이고 기쿠지로(사이고 다카모리의 장남)는 3대 사업(제2수로의 건설과 상수도 정비∙도로 확충∙전기 궤도 부설)을 시행했습니다.
제2수로 건설은 3대 사업의 핵심으로서 전선 터널 수로를 제1수로 옆에 설치한 것으로 메이지 41(1908)년에 착공하여 메이지 45(1912)년에 완성했습니다. 또 동시에 제2수로에서 취수하고 일본 최초의 급속 여과방식을 적용한 게아게 정수장이 완성되어 교토시의 수도 사업이 탄생했습니다.

게아게 정수장 저수지 전경(메이지 45(1912)년 5월 10일)

게아게 정수장 여과장 내부(메이지 45(1912)년 3월 26일)

수도 사업에 대해서는 수도 창설 당시 교토시 인구는 약 50만 명, 이중 급수 인구는 약 4만 명으로 보급률은 8% 정도였지만, 그 후 시역 확대 등으로 인한 이용자와 물 사용량의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 다이쇼 말엽부터 헤이세이까지 8차례에 걸친 확장 사업을 시행하여 현재의 보급률은 99%를 넘어섰습니다.

다이쇼

초기의 교토 시영 전철 차량(메이지 45(1912)년 5월 10일)

확충 후의 시조도리 시조카라스마에서 동쪽을 바라다보다(메이지 45(1912)년 5월 10일)

제2수로를 뚫고 유량이 증가하면서 게아게 하류인 제1수로는 현재와 같이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제2기 게아게・에비스가와・스미조메(당시는 후시미라는 호칭) 3개의 발전소가 신설되어 발전량이 약 4배로 증가했습니다. 이 전기를 이용해 도로 확충으로 새롭게 펼쳐진 간선도로를 시영 전철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한편으로 철도를 비롯한 육상 교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선박 운수는 점차 그 편이 감소하여 오쓰・교토간 다리의 기능을 잃는 동시에 화물 수송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쇼와

제1터널 내부 작업 풍경(쇼와 40년대)

쇼와에 들어서면서 선박 운수의 화물량은 더욱 감소해 쇼와 23(1948)년에 게아게 인클라인이 중지되고 쇼와 26(1951)년 9월로 수로의 선박 운수는 오랫동안 끊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력 사업에 대해서는 전쟁 중의 배전 통제령에 따라 쇼와 17(1942)년에 교토시에서 간사이배전(현재의 간사이전력)으로 이관되었으나, 게아게・에비스가와・스미조메(구 후시미) 3개의 수력 발전소는 현재도 현역 시설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비와호 수로에 관해서는 쇼와 20년경부터 자주 개수공사를 시행했는데 쇼와 43(1968)년부터 쇼와 49(1974)년까지는 도수로 정비 사업으로 노후화된 오쓰부터 게아게까지의 제1・제2수로 전선에 걸쳐 대규모 개수를 시행했습니다(쇼와의 대규모 개수)
또한, 쇼와 45(1970)년에는 국철(당시) 고세이선 건설에 따른 대응으로 야마시나구 시노미야 정박지에서 안슈까지의 구간에 모로하터널이 새로 건설되어 수로를 교체했습니다.

철학의 길

한편, 쇼와 40년대 경부터는 현역 시설인 비와호 수로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도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철학의 길’을 비롯한 수로 분선 연선의 정비와 게아게 인클라인의 복원, 히가시야마 녹지공원(야마시나구)의 정비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 쇼와 58(1983)년에는 수로각 및 인클라인이 교토시 사적에 지정되었고 나아가 헤세이 8(1996)년에는 이들을 포함한 비와호 수로 관련 시설 12곳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헤이세이

제2수로 연결 터널 샤프트 공사(오쓰시 간논지)

제2수로 연결 터널 후지오 산악터널 작업 기지

헤이세이 11(1999)년에는 수도수원인 제2수로의 취수 대책으로 제1수로보다 약 20m 깊은 위치에 새롭게 제2수로 연결 터널(바이패스 터널)을 건설하고 수도 원수의 안정 공급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날마다 적절한 유지 관리를 하면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물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와호 수로선

구 어소(御所) 수도 펌프실

헤이세이 27(2015)년, ‘비와호 수로 연락선 부활 시행 사업’으로 비와호 수로 보트 투어 실행위원회 주최로 오쓰∙야마시나∙게아게간 시험운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헤이세이 30(2018)년 3월에는 쇼와 26(1951)년에 한때 끊겼던 비와호 수로의 배 운항이 67년 만에 부활하고 새로 설치된 ‘비와호 수로 연선 매력 창조 협의회’ 주최의 ‘비와호 수로 연락선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게아게 인클라인 아래의 터널 네지리만포의 현판에는 기타가키 구니미치의 낙관 ‘낙백년지몽(楽百年之夢)’이 있습니다. 메이지의 선인이 100년 앞을 내다보며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완성한 비와호 수로는 시대와 함께 용도를 크게 변화시키면서도 그때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12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교토의 물을 지키고 지탱하고 있습니다.